까만 것
잃어버린 것
그 이름조차 흐릿해진 채,
그저 까만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끝인 줄만 알았던 시간,
사라진 게 아니라,
기적처럼 여기까지 와 있었을 뿐.
『귤빛연작』, 그 네 번째 이야기.
– 04 🍊 –
까만 것
_잃어버린 것._
노을빛은 땅을 더 가까이 물들이고,
이파리가 남긴 꼭지와 함께
까만 것이 조용히, 동그랗게 남았다.
그렇게 착각이 스민다.
이 까만 빛이 내 빛이라고,
주황빛은 잃은 지 오래라고.
벗겨지기로 정해진 껍질 위에,
진짜인 척 스며든 가짜를 붙잡는다.
끝났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조차,
감사할 날은 반드시 온다.
우리는 혼자 버틴 적이 없으니까.
곁에, 계속 머무는 것이 있다.
까만 채로 버텨낸 모든 순간을
조용히 품어준 것이 있다.
드러나지 않아도, 다만 느껴진다.
까만 채로, 여기 있으니까.
그래서 까만 것들은
매일, 조용한 기적 속에 있다.